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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83년 만에 상봉한 월성 비편… 그 뒤에 흐르는 신라 천년과 역사의 숨결

ARA KOREA 2026. 10. 1. 01:53

사진 제공 : 현암 최정간

 

1937년 석당 최남주가 수습한 월성 비편, 2020년 출토된 또 하나의 조각과 83년 만에 한 몸으로

해월 최시형과 석당 최남주, 최정필·최정대·최정간으로 이어지는 한 집안의 기록

발견과 보존, 기록으로 이어진 한 세기의 여정…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등 역사문화 콘텐츠로의 확장 기대

1937년, 월성에 남겨진 한 글자

1937년 6월 27일. 신라 천년 왕경의 중심이었던 경주 월성 서편에서 한 조각의 비편이 수습됐다.

돌의 뒷면에는 먹으로 쓴 짧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昭和 一二 六 二七 西月城址 崔’

1937년 6월 27일, 서월성지. 그리고 마지막에 남겨진 한 글자 ‘崔’.

국가유산청은 이 묵서가 해당 비편이 1937년 6월 27일 서월성지에서 수습됐으며,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서 활동하던 석당 최남주가 그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¹

그로부터 83년이 흐른 2020년, 경주 계림~월성 진입로 구간 발굴조사에서 또 하나의 비편이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이 석재 산지를 공동 분석한 결과, 두 비편은 모두 경주 남산 알칼리 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3차원(3D) 스캔 결과물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비편의 한쪽 면이 서로 합쳐지는 사실이 확인됐다.¹

1937년과 2020년.

서로 다른 시대에 모습을 드러낸 두 비편은 83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두 비편의 상봉에는 현대 고고학의 성과와 함께 한 세기에 가까운 발견과 보존, 기록의 시간이 겹쳐 있다. 경주의 산야를 걸으며 신라의 문화유산을 찾아 지켜온 한 사람, 그가 남긴 기록, 그리고 그 역사를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다음 세대의 시간이 월성의 작은 돌 위에서 서로 만난다.

해월 최시형, 기록으로 이어진 집안의 역사

이 집안의 기록을 따라가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인 동학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1827~1898)을 만나게 된다.

경주 출신인 해월은 수운 최제우의 뒤를 이은 동학의 제2대 교주였다. 그는 교단의 조직을 정비하고 동학의 가르침을 확산했으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해 동학의 사상과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²

해월과 그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는 훗날 현암(玄巖) 최정간(崔正侃)의 저술로 다시 기록됐다. 현암은 1994년 『해월 최시형家의 사람들』을 웅진출판주식회사에서 펴냈으며, 이 책의 서지정보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학농민혁명사논저목록’에 등재돼 있다.³

한 집안에 전해온 기억은 현암의 집필을 거쳐 한 권의 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출간 30여 년이 흐른 오늘에도 그 기록은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남아 있다.

신라의 땅을 걸었던 석당 최남주

현암의 아버지 석당(石堂) 최남주(崔南柱·1905~1980)의 생애는 경주 문화유산의 발견과 보존의 역사와 깊이 맞닿아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석당은 1925년 오늘날 국립경주박물관의 모태가 된 재단법인 경주고적보존회에 촉탁으로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서봉총 발굴 현장에 한국인으로 참여했으며, 1926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 왕세자가 발굴 현장을 찾았을 때도 그 자리를 함께했다.⁴

석당에게 경주의 문화유산을 찾고 보존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 이어진 삶의 궤적이었다.

신라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후대의 연구로 연결하는 그의 시간 속에 1937년 월성에서 수습된 작은 비편도 자리한다. 그가 마주했던 한 조각의 돌은 오랜 세월을 지나 현대 고고학의 연구 대상이 됐고, 비편 뒷면에 남은 날짜와 장소, ‘崔’라는 묵서는 오늘날까지 그 수습 경위를 살피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¹

83년의 시간을 이은 현대 고고학

세월이 흐르며 문화유산 조사와 고고학 연구에는 새로운 기술과 연구 방법이 더해졌다.

2020년 월성에서 또 하나의 비편이 출토된 뒤 두 비편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정밀조사가 이어졌다. 석재 산지 분석을 통해 두 비편 모두 경주 남산 알칼리 화강암으로 제작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3차원 스캔 결과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비편의 한쪽 면이 서로 합쳐지는 사실도 확인됐다.¹

1937년의 기록, 2020년의 발굴,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조사 기술.

서로 다른 세 시대의 시간이 하나의 비편 위에서 만났다.

83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두 돌의 결합은 문화유산에서 발견과 기록, 보존이 지닌 가치를 다시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시간을 이어간 세 아들

석당이 남긴 문화유산과 국제교류의 인연은 다음 세대의 삶에서도 이어졌다.

장남 최정필은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한국박물관학회 회장과 국제박물관위원회 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에 임명됐다.⁵

차남 최정대는 스웨덴과 이어진 가족의 오랜 인연에 함께했고, 막내 현암은 도예와 저술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와 집안의 기록을 펼쳐왔다.

석당이 경주의 현장에서 문화유산을 발견하고 보존하는 길을 걸었다면, 다음 세대에서는 학문과 박물관, 국제교류, 예술과 저술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으로 그 시간이 이어졌다.

서봉총에서 시작된 한국과 스웨덴의 인연

1926년 경주 서봉총은 석당의 생애에서 특별한 국제적 인연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다.

서봉총 발굴 현장에서 석당은 당시 스웨덴 왕세자였던 구스타브 아돌프와 만났다. 연합뉴스와 동아일보는 서봉총 발굴에서 시작된 최남주와 스웨덴 왕실의 인연을 기록하고 있다.⁴·⁶

서봉총에서 맺어진 인연은 이후 오랜 문화교류로 이어졌다. 석당은 1962년 한국-스웨덴협회를 창설했고, 1971년 스웨덴 왕실로부터 바자훈장 기사장을 받았다.⁴

그리고 2010년에는 장남 최정필과 차남 최정대 형제가 스웨덴 왕실로부터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이를 1926년 서봉총 발굴에서 시작해 2대에 걸쳐 이어진 한국과 스웨덴 왕실의 인연으로 조명했다.⁶

신라의 고분에서 시작된 한 만남은 8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서봉총은 고고학의 현장이면서 한국과 스웨덴의 문화적 인연을 품은 특별한 공간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현암, 도자와 글로 이어온 기록

막내 현암은 도예와 저술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기록해왔다.

그의 도예작품 ‘고향의 달(The moon of homeland)’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소장품으로 소개됐으며, 2011년 매경이코노미 창간 기념 CEO 소장품 자선경매에 출품됐다.⁷

현암은 이보다 앞선 1994년 『해월 최시형家의 사람들』을 웅진출판주식회사에서 출간했다. 이 책의 서지정보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등재돼 있다.³

도자는 흙에 시간을 새기고, 글은 기억을 문장으로 남긴다.

현암의 예술과 저술은 서로 다른 형식 속에서 과거의 시간과 오늘을 이어주는 기록의 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83년 만의 상봉, 다시 열린 월성의 시간

2026년 4월 13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은 1937년과 2020년에 각각 수습된 두 비편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을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보고에서 특별 공개했다.¹

오랜 시간 서로 다른 곳에 보존돼 있던 두 조각은 현대의 조사 기술을 통해 다시 하나의 형상으로 이어졌다.

이 장면에는 특별한 시간의 층위가 펼쳐진다.

신라 왕경 월성이 품었던 고대의 시간, 1937년 비편이 수습된 시간, 2020년 또 하나의 비편이 발굴된 시간, 그리고 두 비편을 정밀하게 분석해 다시 맞춘 오늘의 시간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1937년 비편 뒤에 남겨진 날짜와 장소, 그리고 ‘崔’라는 글자는 그 긴 시간을 이어주는 기록으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라 천년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서사

시간을 길게 펼쳐보면 이 이야기에는 여러 시대의 역사와 인물이 층층이 포개져 있다.

신라 천년 왕경의 중심 월성이 있고, 조선 후기 동학을 이끈 해월 최시형의 시간이 있다. 20세기로 접어들면 경주의 문화유산을 찾아 현장을 누빈 석당 최남주가 등장한다.

1926년 서봉총에서는 스웨덴 왕세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1937년 월성에서 수습된 비편 뒤에는 날짜와 장소, 그리고 ‘崔’라는 기록이 남았다.

그 뒤를 이어 최정필은 학문과 박물관 분야에서 활동했고, 최정대는 스웨덴과 이어진 가족의 국제교류에 함께했으며, 현암은 도예와 저술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와 기록을 이어왔다.

그리고 2020년, 월성의 땅에서 또 하나의 비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83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수습된 두 비편은 석재 분석과 3차원 스캔을 거쳐 다시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¹

역사문화 콘텐츠로 확장되는 기록의 가치

월성 비편과 석당을 둘러싼 기록에는 여러 시대와 인물이 교차하는 풍부한 역사문화 서사가 담겨 있다.

신라와 월성, 해월과 동학, 일제강점기 경주의 문화유산 현장과 석당, 서봉총에서 시작된 스웨덴과의 인연, 아버지와 세 아들, 1937년의 묵서와 2020년의 발굴, 그리고 83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두 비편.

각각의 장면은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는 풍부한 서사적 자산을 품고 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 기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서로 다른 시대에 발견된 문화유산이 다시 만나 새로운 연구의 문을 여는 과정은 문화유산이 오늘의 세대와 만나는 방식도 보여준다.

이 긴 시간을 관통하는 중심에는 발견과 보존, 그리고 기록의 가치가 자리한다.

누군가는 발견했고, 누군가는 기록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기록을 지켜 다음 세대로 전했다.

1937년 6월 27일.

월성에서 수습된 작은 돌의 뒷면에는 날짜와 장소, 그리고 한 글자가 남았다.

‘崔’.

그 한 글자에 담긴 기록은 긴 세월을 건너 석당의 시대와 오늘의 고고학을 이어주고 있다.

발견은 역사의 한 순간을 열고, 기록은 그 순간에 시간을 부여한다. 보존은 그 시간을 다음 세대로 건넨다.

83년 만에 다시 만난 월성의 두 비편은 그렇게 신라 천년의 시간과 한 세기에 가까운 사람들의 기록을 오늘의 우리 앞에 다시 펼쳐 보이고 있다.

주석 및 참고자료

  1. 국가유산청, 「1937년과 2020년 경주 월성 수습 비편들(돌비석 조각) 원래 하나였다」, 2026. 4. 13. 1937년 비편의 묵서와 최남주, 2020년 출토 비편, 석재 산지 분석, 3차원 스캔 및 두 비편의 결합에 관한 공식 발표.
    국가유산청 공식 보도자료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시형」. 해월 최시형의 생애와 동학 제2대 교주 계승, 『동경대전』·『용담유사』 간행 등에 관한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시형」
  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최정간, 『해월 최시형家의 사람들』, 웅진출판주식회사, 1994.
    국사편찬위원회 『해월 최시형家의 사람들』 서지정보
  4. 연합뉴스, 「신라문화재 발굴·보존에 일생 바친 최남주」, 2008. 10. 20. 경주고적보존회와 서봉총 발굴, 스웨덴 왕실과의 인연, 한국-스웨덴협회 등에 관한 보도.
    연합뉴스 기사 원문
  5.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에 최정필 세종대 명예교수 임명」, 2018. 1. 24. 최정필의 세종대학교 교수·박물관장 및 박물관 관련 활동에 관한 공식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보도자료
  6. 동아일보, 「신라금관이 맺어준 韓-스웨덴왕실 2代 인연」, 2010. 7. 21. 서봉총에서 시작된 인연과 최정필·최정대 형제의 북극성 훈장 수훈 등에 관한 보도.
    동아일보 기사 원문
  7. 매경ECONOMY, 「[자선경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2011. 7. 28. 현암 최정간의 도예작품 ‘고향의 달(The moon of homeland)’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소장품에 관한 보도. 기사에서는 두 사람의 가족관계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매경ECONOMY 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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