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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진하 — 소리와 이미지가 만나는 시간

ARA KOREA 2026. 10. 14. 16:07

〈킹덤〉에서 INDRAVERSE까지, 감각의 경계를 확장하는 음악

 

작곡가이자 미디어아티스트 김진하는 소리를 하나의 장면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청각적 사건인 동시에, 이미지와 공간, 관객의 움직임과 만나며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는 재료다.

Radiohead의 〈Creep〉에서 음악의 강렬한 정서를 처음 실감했던 그는 이후 영화음악과 컴퓨터음악, 미디어아트의 영역을 오가며 소리의 역할을 확장해 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시즌 1의 음악 작곡에 참여하며 영상 속 세계관과 사운드의 관계를 탐구했고, 최근에는 실시간 오디오 비주얼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통해 소리와 이미지가 서로 반응하는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김진하가 바라보는 영상음악의 감각, 〈킹덤〉 작업을 통해 발견한 사운드의 경계, INDRAVERSE 〈갈등의 변주〉에 담긴 시각적 사유, 그리고 기술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정서에 대해 들어보았다.


I. 음악의 시작, 예술가의 성장

Q1. 음악가의 삶에는 저마다의 출발점이 있습니다. 처음 음악에 매료되었던 순간과 작곡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돌아본다면요.

제가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Radiohead의 〈Creep〉을 들었던 순간입니다. 이 곡을 통해 음악이 사람의 정서를 얼마나 강렬하게 흔들 수 있는지 처음 실감했습니다.

〈Creep〉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니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고 거친 에너지가 공존하는 곡입니다.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폭발하는 기타 사운드, 그리고 Thom Yorke의 목소리에 담긴 정서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음악을 듣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저 역시 그런 내면의 울림을 소리로 표현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말로 제 감정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표현 자체에도 서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답답한 마음을 꺼내고 싶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음악은 아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이후 작곡을 공부하고 영화음악을 만들면서 표현 방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음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Q2.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뉴미디어음악을 공부하며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학문적 탐구와 실제 창작을 병행한 경험은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영화음악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영상의 관계를 깊이 바라보았습니다. 음악이 영상의 정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소리가 사용되는가에 따라 관객의 감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이러한 시선을 더욱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음악을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소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요소와 공간, 기술, 관객의 반응과 연결되는 하나의 예술적 사건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접하면서 음악이 반드시 고정된 형태로만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음악이 변화하거나, 소리의 특성이 실시간으로 이미지에 반영되는 창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학문적 연구와 창작은 서로 분리된 활동이 아닙니다. 창작 현장에서 생긴 질문이 연구 주제가 되고, 연구를 통해 발견한 개념이 다시 작품의 아이디어로 이어집니다. 결국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음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보게 한 과정이었습니다.

Q3. 작곡가의 음악적 세계는 작품과 사람, 여러 시간이 쌓이며 형성됩니다. 자신의 예술관에 특별한 영향을 남긴 인물이나 작품, 기억에 남는 전환점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Radiohead처럼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음악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영화음악을 만들며, 음악이 반드시 전면에 드러나야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강렬한 음악이 필요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주 작은 소리 하나가 훨씬 큰 정서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음악이 없는 순간이 가장 음악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 영화음악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감각이 조금씩 쌓였습니다.

또 하나의 전환점은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눈을 돌린 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영상이 먼저 존재하고 음악이 그 안에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음악이 이미지 자체를 만들어 내거나 변화시키는 창작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제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축은 감정과 시간입니다. 그 감정을 영화에서는 음악으로 표현했고, 지금은 소리와 이미지가 함께 움직이는 방식으로 확장해 보고 있습니다.

II. 〈킹덤〉, 영상 속에 살아 있는 음악

Q4.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시즌 1의 음악 작곡에 참여했습니다. 작품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과 당시의 음악적 도전을 들려준다면요.

〈킹덤〉과의 인연은 김성훈 감독님과의 이전 작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 있던 포스트 프로덕션팀은 김성훈 감독님의 〈끝까지 간다〉, 〈터널〉에 참여한 바 있었고, 그 인연으로 〈킹덤〉에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킹덤〉은 음악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좀비라는 장르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음악 역시 전통적인 시대극의 분위기와 현대적인 장르 음악의 긴장감을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제가 영상음악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작품이 가진 세계관입니다. 무서운 장면에 무서운 음악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소리가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킹덤〉처럼 긴장감과 속도감이 중요한 작품에서는 음악의 리듬과 음색, 그리고 소리가 등장하는 타이밍이 특히 섬세해야 합니다. 작곡가에게 이러한 장르적 특성을 음악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음악은 장면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장치를 넘어, 관객이 작품의 세계 안으로 진입하도록 여는 감각적 통로가 되어야 했습니다.

Q5. 〈킹덤〉은 조선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공포와 긴장, 인간의 욕망과 생존을 그려 낸 작품입니다. 이러한 서사에서 음악은 인물의 심리와 장면의 정서를 어떻게 구성했나요.

공포 장르에서 음악이 가장 예민하게 다루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긴장감입니다. 하지만 긴장감을 표현한다고 해서 항상 크고 자극적인 소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낮은 주파수의 지속음이나 불규칙한 리듬, 불협화적인 음색처럼 관객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들이 심리적인 불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킹덤〉과 같은 작품에서는 좀비라는 대상 자체보다 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내면에 주목하는 접근도 필요합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 인물 사이의 불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할 때 멜로디뿐 아니라 음색과 리듬, 공간감까지 함께 고려합니다. 음악이 모든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관객이 스스로 불안과 긴장을 감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Q6. 영상음악은 화면의 흐름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도 관객의 기억 속에 고유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 장면에 음악이 필요한 순간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영상을 처음 볼 때 음악을 어떻게 만들지부터 떠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먼저 그 장면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인물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다음에 음악이 그 장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살핍니다.

때로는 음악이 감정을 이끌어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화면이 가진 힘을 방해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만큼이나 끝나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음악이 사라진 뒤에 남는 정적이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영상음악은 좋은 음악을 쓰는 일인 동시에, 그 음악이 놓일 자리를 찾는 일입니다.

Q7. 〈킹덤〉의 제작 경험을 돌아볼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작업 과정이 있나요. 그 경험이 이후의 창작에 남긴 변화도 궁금합니다.

〈킹덤〉을 떠올릴 때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의 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악과 효과음을 구분해서 보기 쉽지만, 실제 영상에서는 그 경계가 상당히 유동적입니다. 낮게 깔리는 드론 사운드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고, 반복되는 효과음이 하나의 리듬처럼 작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경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긴장감이 중요한 장르에서는 멜로디나 화성뿐 아니라 소리의 질감 자체가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이어 가고 있는 오디오 비주얼 실험과도 연결됩니다.

소리를 하나의 음표나 악기 소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움직임, 시각적 형태를 가진 재료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III. 소리와 이미지, 감각의 경계를 넘어서

Q8. 영상음악과 컴퓨터음악, 미디어아트는 서로 다른 제작 환경과 표현 방식을 지닙니다. 각 분야의 작업을 경험하면서 발견한 음악적 확장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 세 분야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시간과 감각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영상의 시간에 음악을 맞춥니다. 반면 컴퓨터음악에서는 소리 자체의 구조나 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미디어아트에서는 소리와 이미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품이 형성됩니다.

특히 미디어아트에서는 음악이 반드시 정해진 길이와 순서로 진행될 필요가 없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관객의 움직임이나 공간의 변화에 따라 작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험을 거치며 창작자의 역할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결과를 미리 결정하는 사람에서, 다양한 결과가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감각의 구조와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Q9.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에서는 관객의 움직임이나 외부 자극이 작품의 진행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창작자의 사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요.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영화음악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타임라인을 따라갑니다. 특정 장면이 몇 초에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음악도 그 구조 안에서 움직입니다.

반면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에서는 시간이 반드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관객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진행이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작품이라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작곡가의 사고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음악이 변화하는 규칙과 조건을 설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창작의 길이 열린다고 봅니다. 작곡가가 모든 순간을 통제하지 않아도 작품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10. 음악과 시각예술이 함께하는 작품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소리와 이미지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오디오 비주얼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의 비트에 맞춰 화면이 깜빡이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관객에게 깊이 있는 감각을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핵심은 소리와 이미지가 어떤 관계로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가에 있습니다.

음악의 리듬이 시각적 움직임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음색의 변화가 색채나 형태의 변화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지의 움직임이 음악적 구조에 영향을 주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특히 두 매체 사이에 약간의 차이나 어긋남이 존재할 때 흥미로운 표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보다 서로 반응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관계가 더 풍부한 감각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제가 주목하는 것은 기술적인 동기화보다 감정적인 연결입니다.

IV. 두 번의 만남, 예술적 사유의 발전

Q11. 2024년 춘천 축제극장 몸짓에서 열린 《중첩된 콜라주 —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에 이어 2026년 《INDRAVERSE》에도 참여했습니다. 두 공연을 잇는 예술적 관심은 무엇인가요.

두 공연을 연결해서 바라볼 때, 제가 지속적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예술적 요소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음악과 영상은 각각 독립적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공연이라는 공간 안에서 만났을 때는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각적 요소를 다루면서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공연과 2026년 《INDRAVERSE》를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면, 소리와 이미지의 결합을 넘어 두 요소가 서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공연은 완성된 작품을 보여 주는 자리라기보다, 창작자와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하나의 감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Q12. 《INDRAVERSE》의 〈갈등의 변주〉는 독립된 존재에서 미세한 어긋남과 갈등, 분열을 거쳐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다섯 장면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상하면서 인간의 관계와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저는 갈등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만들어 낸다고 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만나면 자연스럽게 차이가 생기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갈등의 변주〉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목했습니다. 처음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미세한 어긋남이 점차 커지면서 긴장과 분열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 분열은 소멸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질서와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완벽하게 일치하는 관계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갈등은 파괴다’라는 관점보다 변화와 생성의 과정에 가깝습니다.

Q13. 〈갈등의 변주〉에서는 선과 입자, 실 등의 시각적 요소가 소리에 반응하며 변화합니다. 긴장과 충돌,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저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너무 직접적인 이미지보다 추상적인 형태가 더 많은 여지를 가진다고 봅니다. 하나의 선이 흔들리거나 여러 입자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만으로도 긴장이나 불안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이나 실처럼 연결을 상징하는 요소는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데 흥미로운 재료입니다. 서로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얽히거나 끊어지는 모습이 관계의 변화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크기나 주파수, 리듬 같은 음악적 요소를 이러한 시각적 움직임과 연결하면 감정의 변화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제가 살피는 것은 시각적 효과의 화려함보다, 그 움직임이 작품의 정서적 흐름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입니다.

Q14. 김주환 작곡가와 함께 음악과 시각적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서로 다른 창작 언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예술적 확장은 무엇인가요.

음악과 시각예술이 함께하는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같은 아이디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곡가는 음악의 구조나 리듬, 음색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고, 시각 작업에서는 형태나 움직임, 공간적 관계를 중심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때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김주환 작곡가와의 협업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보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음악과 이미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협업이란 서로의 표현 방식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가 만났을 때 생겨나는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V. 예술가의 삶, 앞으로의 시간

Q15. 작곡과 미디어아트, 교육 활동을 함께 이어 가고 있습니다. 젊은 음악가들과 나누고 싶은 예술적 태도가 있다면요.

요즘은 음악을 제작할 수 있는 도구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장비와 스튜디오가 필요했던 작업도 이제는 개인 컴퓨터에서 상당 부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장비와 새로운 프로그램이 곧 좋은 작품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아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특정한 장르나 제작 방식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전자음악을 만들 수도 있고, 영화음악을 작업하던 사람이 미디어아트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질문을 가지고 계속 실험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Q16. 인공지능과 실시간 생성 기술은 음악과 영상의 제작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속에서 예술가의 경험과 감각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 음악 창작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미 음악과 영상을 생성하거나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기술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술을 긍정과 부정의 문제로 보기보다, 창작자가 어떤 태도로 다루는가의 문제로 봅니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예술가의 선택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비슷한 결과물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환경에서는 결과보다 태도와 관점이 작품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악에는 창작자가 살아오며 겪은 감정과 기억,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깁니다. 저에게 음악의 출발점이 Radiohead의 〈Creep〉이었던 것처럼, 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예술적 순간은 기술적 산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겠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각과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Q17. 음악과 함께한 시간에는 여러 작품과 사람, 성취와 고민의 순간들이 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무엇인가요.

특정한 작품 하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작품마다 다른 시간과 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설렘도 기억에 남고, 음악감독으로서 작품 전체의 음악적 방향을 고민했던 시간도 제게는 소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어떤 작품을 했느냐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입니다. 음악은 혼자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됩니다. 특히 영상음악은 감독과 제작진, 연주자, 사운드 엔지니어 등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처음 Radiohead의 음악을 들었을 때를 떠올립니다. 음악이 좋아서, 그 소리가 주는 감정이 좋아서 시작했던 마음입니다. 여러 작업을 해 왔지만, 결국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Q18. 영상음악과 컴퓨터음악, 미디어아트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이어 왔습니다.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예술적 주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는 음악과 시각예술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발전하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싶습니다. 특히 실시간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와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음악의 주파수나 리듬, 음색 같은 요소가 시각적인 형태나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반대로 시각적 요소가 음악의 구조에 영향을 주는 작업을 계속 발전시켜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TouchDesigner와 같은 실시간 미디어 제작 환경을 활용해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귀로만 듣는 데서 나아가, 공간 안에서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결국 사람의 감정입니다. 처음 Radiohead의 〈Creep〉을 들었을 때 음악이 제게 남겼던 강렬한 인상처럼, 저의 작품도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는 하나의 감각적 장면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표현하는 방식은 계속 달라졌지만, 소리를 통해 누군가의 내면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같습니다.